지식

위험에 대한 대응

인생오십년 2021. 2. 15. 08:41

위험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과 우리의 대응을 비교해보자. 순진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여러 곳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각 유형의 위험에서 매년 실제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의 수로 판단한 심각성에 비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생각은 적어도 5가지 이유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1. 매년 어떤 유형의 위험으로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람의 수는 적을 수 있다. 우리가 그런 위험을 경계하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철저하게 합리적이라면, 쉽게 합산되는 실제 사망자 수보다, 추정하기 힘들겠지만 우리가 어떤 대책도 취하지 않았다면 사망했을지도 모를 사람의 수로 위험의 정도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평소에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한 사회를 지탱하는 많은 관습이 조직적으로 운영되며 기아로 사망할 위험을 줄이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사자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자가 무척 위험한 짐승이어서 전통사회 구성원이 사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정교한 대책을 취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해가 떨어진 후에는 거주지를 떠나지 않고, 낮에 거주지를 나갈 때도 사자의 흔적과 징후를 찾아 주변을 면밀히 살피며, 여자들이 거주지를 나설 때는 항상 무리지어 다니고 끊임없이 큰 소리를 나누며, 늙고 다친 사자나 굶주리고 홀로 다니는 사자를 조심한다. 

 

2. 웨인 그레츠키의 변형된 원칙 "적극적으로 위험에 달려들 때 위험한 상황에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가파르게 상승한다"로 설명된다. 누구도 재미로 불난 집에 뛰어들지 않지만 그런 집에 갇힌 우리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뛰어든다. 요즘 많은 미국인과 유럽인, 일본인이 원자려 발전소의 건설 타당성을 재검토하며 고민하는 이유는, 첫째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로로 원자력의 위험성을 재인식하게 되었고, 둘째로는 석탄과 석유와 가스를 이용하는 발전소를 줄임으로써 지구온난화를 감축하는 이익이 원자력의 위험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원자력이 위험하니 쓰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은, 비행기가 위험하니 타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과 같다. 

3. 인간은 위험을 습관적으로 잘못 평가한다. 심리학자들이 광범위하게 연구했듯, 적어도 서구 세계는 그렇다. 미국인에게 오늘날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테러리스트, 항공기 추락, 핵발전소 사고를 언급하지만 이런 위험들로 사망한 미국인을 모두 합해도 자동차, 알코올, 흡연으로 사망한 미국인보다 훨씬 적다.  지난 40년 동안 어떤 해에도 이 결과가 뒤집어진 적은 없었다. 미국인이 생각하는 위험 순위를 실제 사망원인과 비교해보면, 미국인들이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과 DNA 기반으로 한 기술, 새로운 화학공학, 스프레이 통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반면 알코올과 자동차, 흡연의 위험은 과소평가되고,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외과 수술과 가전제품, 식품 방부제의 위험도도 과소평가되는 편이다. 이런 편견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사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 생소하고 잘 몰라서 평가하기 어려운 위험이 관련된 상황을 두려워하는 성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존재한 것이어서 그런대로 통제할 수 있는 듯한 일상적인 위험, 또 우리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 많은 사람보다 개개인을 죽음에 몰아넣는 위험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자동차와 알코올과 흡연의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우리는 이런 위험을 선택할 때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위험이 다른 사람들을 죽일지는 몰라도 자기 자신은 조심하고 강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4. 위험을 남들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위험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오토바이 등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 강박적인 도박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보험회사들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보다 위험을 더 자주 찾아다니고 남성이라도 위험을 추구하는 강도가 20대에 절정을 이루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든다는 일반적인 직관이 확인된다.

바이크는 중독이다. 아직도 꿈에서 바이크를 타곤 한다. 하지만 실제 구입해서 타다보면 별로 재미있지 않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5. 보수적인 다른 사회보다 위험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다. 이런 차이는 제1세계 국가들에서도 확인되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뉴기니 부족들 사이에서도 관찰된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면, 최근 이라크에서 군사작전을 시행하는 동안 미군이 프랑스군이나 독일군보다 위험 앞에서 무모하게 행동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객관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 차이를 나름대로 추측해보면, 프랑스와 독일은 두 번의 세계 전쟁을 통해서 어리석을 정도로 위험한 군사작전 때문에 거의 700만명의 시민이 죽었다는 교훈을 배운 반면, 현대 미국을 건국한 이민자들은 위험을 회피하는 고향 사람들과 고향을 떠나서 낯설고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는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요컨대 모든 인간 사회는 위험에 부딪치지만, 지역에 따라, 또 생활방식에 따라서 사회가 직면하는 위험은 다르다. 우리는 접이식 사다리와 자동차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뉴기니 저지대 사람들은 악어와 사이클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회마다 위험하다고 인지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위험을 경감하기 위한 대책들도 다르다. 

 

출처: 어제까지의 세계 468p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

 

현대 사회에서 위기에 대한 대응은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DNA 조작, 원자력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내고, 흡연이나 헬멧을 쓰지 않고 배달하는 습관적인 행위에 내재된 위험에 집중하는 편이 사망률을 낮추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미디어에서 얻기 때문에, 즉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 무척 드문 사건과 사망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뉴스를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간접적으로 얻기 때문에 위험을 잘못 평가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