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와 금의 정점, 그리고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라는 불씨
글로벌 자산시장을 흔들 복합적인 리스크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달러가 약세로 돌아섰고, 금값은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기술적 과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핵심 변수 하나, 바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위험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시장은 착시 속에서 안정을 가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2008년 금융위기 전야를 떠올리게 하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달러, 금, 그리고 일본 엔이라는 세 가지 자산이 동시에 비정상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지금은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가”가 아닌, “돈이 어디서 빠져나오고 있는가”를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1. 달러 약세, 더 이상은 '킹달러'가 아니다
달러 인덱스(DXY)는 최근 101102선에서 머물고 있다. 이는 20222023년 ‘킹달러’ 시절의 115 수준에 비하면 명백한 약세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서 달러에 대한 투기적 롱 포지션이 점차 청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재선 가능성이 점차 부각되면서 보호무역주의 회귀에 대한 우려도 달러 약세에 일조하고 있다. 트럼프는 관세 정책을 통해 미국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글로벌 교역 위축과 리스크 회피 수요는 ‘달러 강세’로 이어지기보다 '유동성 회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달러 약세는 단순한 통화 정책의 함수가 아니라, 국제자본이 미국을 떠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이기도 하다. 미국 국채 수요 약화, 아시아계 외환보유액의 다변화 전략, 중동 산유국의 디달러화 움직임 등은 달러 자산의 매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2. 금값, 역사적 고점에 도달했지만…
2024년 말과 2025년 초,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2,400달러를 돌파하며 역사적 고점을 경신했다. 달러 약세, 지정학적 리스크, 중장기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금의 랠리를 견인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피로감’이 변수다. 금의 기술적 RSI 지표는 과열을 시사하고 있으며, 선물시장에서 롱포지션 비율은 80% 이상으로 집계된다. 이는 언제든지 차익실현 매물이 대거 출회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또한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세 역시 정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을 매입하던 이유는 주로 ‘디달러화’와 외환보유액 다변화였지만, 국제금리가 안정화되면 이 같은 수요는 급격히 둔화될 수 있다. 특히 금을 단기 트레이딩 자산으로 접근한 일부 헤지펀드들은 금값 하락 시 대규모 청산에 나설 수 있다.
이처럼 금값은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으며, 달러 약세가 멈추거나 반등으로 전환될 경우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을 자산이기도 하다.
3. 잠재적 뇌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이제 가장 주목해야 할 변수는 ‘엔캐리 트레이드’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수년간 초저금리를 유지하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엔화 차입’을 통한 자산 투자 기회를 제공했다. 엔화는 싸게 빌리고, 고수익 통화(달러, 유로, 원화 등)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낮은 리스크로 높은 수익을 안겨주며 금융시장의 유동성 레버리지를 비정상적으로 키워왔다.
그러나 2024년 말, BOJ의 완화정책 종료 및 기준금리 인상이 신호탄이 됐다. 이는 단순한 정책 전환이 아닌, 수십조 달러에 달하는 ‘차입-투자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엔화가 반등하는 순간, 전 세계 자산시장은 흔들릴 수 있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그동안 엔화를 빌려 고수익 통화에 투자하던 자금은 청산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해당 국가의 자산시장에도 역풍이 되고, 글로벌 리스크 오프 심리를 유발한다.
예컨대, 엔화 차입으로 미국 주식이나 한국 부동산에 투자한 자금은 갑작스런 엔화 강세에 따른 마진콜 우려로 인해 자산을 던져야 한다. 이는 일종의 역환율 쇼크로, 시장 전체에 신용 수축과 유동성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4. 시장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신호들
- 미국 국채 매각: 중국, 일본, 사우디 등이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있다. 이는 달러의 구조적 약세로 이어지며 금값 고점에서 차익 실현을 유도할 수 있다.
- 실질금리와 금의 디커플링: 과거 금은 실질금리가 하락할 때 강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실질금리가 오름세임에도 금값이 오르는 기형적 구조다. 이는 거품의 조짐일 수 있다.
- 엔화의 구조적 반등 가능성: 일본이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과 엔화 강세를 유도할 경우, 글로벌 자금시장은 큰 충격에 빠질 수 있다.
5. 그럼 투자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금 자산의 비중 조절: 금을 단기 투기 자산으로 접근한 투자자라면 차익 실현 시점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금광주나 금 ETF의 수익률이 원자재 금 가격보다 과도하게 상승한 상황이라면 경계해야 한다.
- 엔화 반등의 리스크 회피: 엔화 차입 비율이 높은 자산, 특히 고위험 신흥국 자산(예: 한국, 브라질, 인도 등)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 달러 반등 시그널 감지: 미국의 경제지표 개선, 금리 재인상 논의 등으로 달러가 반등하면 금과 리스크 자산은 동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따라서 달러 인덱스의 기술적 바닥(101~102)에서의 반등 여부에 집중해야 한다.
결론: 지금은 "폭풍 전의 고요"
금값은 천장을 향해 가고 있고, 달러는 바닥을 기고 있으며, 일본 엔화는 바닥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 축이 맞물리는 시점에서, 시장은 과도한 낙관과 자산 가격 상승에 도취되어 있다.
그러나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라는 이 뇌관이 발화되는 순간, 시장은 '리스크 오프' 국면으로 급전환할 수 있다. 지금은 "돈이 어디로 들어오고 있는가"보다, "언제, 어디서 돈이 빠져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