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이를 낳고 축하받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관계의 결을 재확인하게 된다.
선의로 포장된 어떤 행동이, 나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요처럼 다가올 때.
사람 사이의 온도 차, 관계의 민감도, 그리고 거절의 존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돈 대신 물티슈가 도착했다
친구는 10만 원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은 충분하지만, 굳이 돈으로 주고받을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며칠 뒤, 3만 원어치의 물티슈가 집으로 배달됐다.
“그냥 고마운 마음이야. 아기 키우면서 잘 써.”
친구의 말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배려로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분명히 “괜찮다”고 했고, “받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그 뜻은 무시된 채, 친구는 자기 방식대로 마음을 밀어붙였다.
그 물티슈는 지금도 창고에 있다.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은 채.
아마도 그 안에는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상징적인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거절은 의사 표현이다, 무시당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선의니까 받아줘야지”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선의도 상대방의 수용 의사 위에 있어야 한다.
선물도, 호의도, 축하도, 결국은 관계 속에서의 ‘합의된 표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일방적 전달’일 뿐이다.
이런 경험에서 가장 불쾌했던 점은,
단순히 물티슈 때문이 아니다.
‘받지 않겠다’는 나의 결정이 무시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무시가 ‘나는 네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3. 관계의 민감도는 서로 다르다
어쩌면 친구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물티슈를 보냈을 것이다.
아마 "돈은 거절했지만, 물건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불편해하지 않을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편안한 방식’을 고려하는 게 배려다.
사람마다 관계에 대한 민감도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받기만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내 거절을 존중해줄까?”라는 기준으로 관계를 판단한다.
나는 후자였다.
그리고 친구는 전자였던 것이다.
4. 작은 사건이 관계의 중심을 드러낸다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그 친구에게선 연락 한 통 없었다.
물론 모든 생일을 챙겨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강제로 준 선물’은 있었는데, ‘기억해준 말’은 없었다.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이 휑했다.
이건 단순한 생일 문제도, 물티슈 문제도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나를 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정리가, 조용히 머릿속에서 내려졌다.
5. 말하지 않아도, 선은 그어진다
이 일을 친구에게 굳이 말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이미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선이 생겼다.
과거엔 이런 사소한 일도 농담처럼 넘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조심해주는 사람’을 원하게 되었다.
거절을 존중해주는 사람,
침묵 속에서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방식의 호의를 강요하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가 편하다.
그 외의 관계는, 이제 그만 정리하고 싶다.
에필로그 — 관계에도 유통기한은 있다
사람 사이의 마음은 늘 같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내 감정을 무시한 채,
자기 감정을 내게 밀어붙였던 그 친구와의 관계는
그 물티슈가 도착한 순간부터 이미 조금씩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아직도 내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그 사람과 이제는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만 알면 되니까.
내 마음이 덜 다치기 위해,
이제는 나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조용히 문을 닫으려 한다.
마무리
이 칼럼은 단지 ‘선물 거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관계를 구성하는 민감도와 존중의 문제,
그리고 누군가의 방식이 나에게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선을 이해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말없이 선을 긋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숙한 이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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