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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깜도 안 되는 ‘부자의 아들’, 그리고 대통령 놀이

by Mansamusa 2025. 8. 10.



정치는 본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 속에는, 사실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여건’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냉정한 조건이 숨어 있다. 문제는, 그 여건이 부모의 은행 잔고에서 비롯될 때다.

도널드 트럼프를 보자. 그는 스스로를 ‘천부적인 사업가’이자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로 포장해왔다. 그러나 팩트는 간단하다. 트럼프는 이미 뉴욕 일대에서 부동산 왕국을 세운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의 수백 채 건물과 임대사업 인프라 위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첫 창업 자본’은 대출이 아니라 사실상 아버지의 투자금이었다. 뉴욕타임스의 장기 조사에 따르면,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4억 달러 이상을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그에 비해 일론 머스크는 어땠는가. 머스크도 절대 빈곤층에서 출발한 건 아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이자 부동산 사업가였고, 잠시 에메랄드 광산에 투자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광산은 신화 속 ‘황금알 거위’와 거리가 멀었다. 머스크는 17세에 캐나다로 이주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했고, 이후 미국에서 Zip2와 PayPal을 창업·매각해 번 돈으로 Tesla와 SpaceX에 재투자했다. ‘은수저’였을 수는 있어도, 최소한 본인이 만든 부(富)의 규모는 확실히 스스로 벌어 올린 것이었다.

다시 트럼프로 돌아가 보자. 그는 맨해튼의 화려한 호텔과 빌딩을 자랑했지만, 그 화려함은 고위험 차입과 아버지의 보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1990년대 초 부동산 불황 때 그는 개인 파산 위기에 몰렸고, 이후에는 ‘트럼프’라는 이름을 팔아 라이선스 수익을 올리는 브랜딩 사업으로 생존했다. 실질적으로 그는 부를 창출하는 혁신가라기보다, 아버지의 유산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 PR을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이 ‘미국 대통령’이 됐다. 게다가 지금은 재집권까지 했다. 물론 정치 지도자가 반드시 기술 혁신가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깜’이다. 혁신과 리스크 테이킹으로 세계 산업 지형을 바꾼 머스크와 달리, 트럼프의 업적이라곤 유산으로 시작한 부동산 사업과 미디어 쇼맨십이 전부다. 말하자면 그는 고급 승용차 경주에, 아버지가 사준 완성차를 몰고 나와선 “이 차는 내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이쯤 되면 ‘대통령 놀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놀이의 본질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트럼프의 정치도 그렇다. 그는 정치판에서 자신의 발언과 행동이 어떤 파장을 낳는지, 세계 질서와 국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보다 ‘쇼’로서의 파급력을 중시해왔다. 정책의 정합성이나 지속 가능성은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카메라 플래시와 지지층의 함성이다.

머스크와 비교할 때 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머스크는 우주 탐사, 전기차, 재생에너지 같은 구체적 비전과 실물 산업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와 SNS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전자는 산업 생태계에 실질적 파급을 남기지만, 후자는 뉴스 헤드라인에만 흔적을 남긴다.

정치 지도자의 자격을 논할 때, 출발선이 부유했다고 해서 무조건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출발선 위에서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머스크는 논란 많은 인물이지만, 최소한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했다. 트럼프는? 아버지의 제국 위에서 포즈를 취하며, 그 제국의 무대 세트를 정치판으로 옮겨온 것뿐이다.

‘깜’이라는 건 단순한 능력치의 합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벌어들인 신뢰,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통찰, 그리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명분의 총합이다. 대통령은 놀이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놀이의 무대 장치와 조명만은 누구보다도 잘 다루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무대가 미국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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