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웰치 GE회장의 수많은 별명중 하나가 GE의 반란자이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별명이상의 뜻이 있다. 웰치를 이시대 최고의 경영자로 만든 성공비법이기 때문이다.
GE호의 항해루트를 전통 대신 수익성으로 바꾼 과감함이 없었다면 GE는 21세기 문턱에서 공룡으로 멸종당했을 것이다. 웰치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1등 또는 2등 전략도 일종의 반란이었다. 81년 취임 직후 그가 1,2등이 아닌 사업은 그만두라고 외치고 나섰을 때 GE안팎의 반응은 냉랭했다.
당시 GE는 꾸준히 성장하는 재계의 모범생이었다. 3백50개 사업체중 70%는 이미 시장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웰치의 초점은 현재가 아니었다. 미래에 꽂혀 있었다. 10년후에 1등을 차지할 고성장, 고수익 사업분야. 이것이 1,2등 전략의 핵심이었다.
당시 GE의 수익중 절반정도가 저수익, 저성장의 전통적인 사업분야에서 나왔다. 웰치는 GE가 21세기에도 우량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고부가가치의 하이테크, 서비스업 중심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재편의 설계도는 3원이었다. 첫째원은 GE의 핵심사업, 둘째원은 하이테크산업, 셋째원은 서비스산업이었다. 이 3원안에 들어간 사업은 총 12개. 향후 10년안에 승리하리라고 점친 사업이었다.
웰치 회장은 3원이란 설계도에 맞춰 과감히 저부가가치 사업을 잘라 나갔다. 그 결과 1백50여개에 달하던 사업부문은 12개로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87년 GE가 소형가전사업을 톰슨사의 의료기기 사업과 맞바꾼 것은 최대 논란거리였다.
당시 이 사업은 연간매출 32억달러,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는 간판사업이었다. 무엇보다도 축음기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창립한 GE에서 오디오, TV, VTR 등 소형가전사업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었다.
웰치가 이 사업을 매각키로 결정하자 미국의 유산을 팔아넘기는 매국행위 라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웰치의 경영사전에 전통이란 단어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수익성이었다.
이런 웰치의 안목은 정확했다. 사업재편 덕분에 수익성은 크게 올랐다. 지난해 GE의 매출은 8백93억달러. 81년(2백72억달러)보다 3배정도 늘어났다. 그러나 순익은 82억달러로 81년(16억5천만달러)보다 5배 뛰었다. 현재 GE주식의 시가총액은 2천4백60억달러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GE의 얼굴도 완전히 바뀌었다. 가전업체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이상 GE에 어울리지 않게 됐다. 가전부문의 매출 비중은 불과 7.5%. 대신 금융부문은 총 매출의 40%이상을 차지하는 주력업종이 돼버렸다.
웰치는 관료시스템에도 메스를 댔다. 1,2등 전략의 성공에는 새 하드웨어(사업재구축)를 효율적으로 돌릴 첨단 소프트웨어(민첩한 조직)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80년대초 GE직원 40만명 가운데 2만5천명이 관리자였다. 이중 상급관리자는 5백명, 부사장 이상은 1백30명이었다. 서류하나 결재 맡으려면 9~11단계를 거쳐야 했다. 웰치는 조직축소 역시 반란을 일으키듯, 과감하게 단행했다.
웰치가 맨먼저 손댄 곳은 GE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본사의 전략기획팀. 웰치 회장은 4백명에 달하는 이 팀을 아예 해체해 버렸다. 전략기획 기능은 생산현장이나 각 계열사등 현지에서 추진토록 이관했다.
경영진도 예외없는 수술대상이었다. 81년 웰치회장 취임당시 각 사업부문과 웰치 사이에는 3개 계층이 있었다. 6명의 그룹임원, 그 위에 6명의 섹터임원, 그 위에 2명의 부사장이었다. 웰치는 이들이 자연퇴직하거나 회사를 옮기기까지 4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3개층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12개 전사업은 웰치와 부회장 에드워드 후드가 나눠 직접 관할했다.
중간관리자들의 숫자도 대폭 줄였다. 당시 중간관리자의 적정 부하직원수는 5~8명이란게 통념이었다. 웰치는 15명으로 봤다. 그결과 결재단계는 4~6개로 줄었다. 웰치가 취임 첫 5년간 잘라낸 인원은 13만명. GE 전체종업원의 25%에 해당했다. 30년대 대공황때보다도 큰 숫자였다. GE 직원수는 이제 81년의 절반수준인 24만명으로 줄었다.
GE 잭웰치의 차별화의 신념, 더 넓게 생각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GE신입시절의 잭웰치는 회사의 관료주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높게 평가 했던 상사 구토프의 끈질긴 설득으로 GE에 남기로 한다. 바로 이 설득의 과정에서 MS와 더불어 20세기에 가장 탁월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GE의 가치관이 형성되게 되었다. 잭웰치는 이 신입시절의 위기를 통해 중요한 두가지를 깨닫는다.
‘내가 원했던 것은 관료주의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그의 질문에 대답만 했더라면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사들은 보통 질문을 던질때 이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단지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기 위해서는 내게 제시된 문제보다 더 많이,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만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 나름의 시각까지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엄격히 차별되도록 노력했다.
‘구토프가 나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로 차별화는 나의 기본적인 경영 방식이 되었다. 40년전의 균등한 임금 인상이 아마도 나의 행동을 극단적으로 몰고 갔던 것 같다. 하지만 차별화라는 것은 극단적인 것 그자체이다. 최고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비효율적인 것은 없애 버린다. 엄격한 차별화는 진정한 인재를 발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인재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기업구조에도 엄격한 차별화를 적용하여 기업경영 역사상 전무후무한 획을 긋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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