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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트럼프가 문명4를 했다면? 중상주의는 진짜 파멸의 지름길

by Mansamusa 2025. 4. 11.

중상주의(Mercantilism)는 문명 시리즈를 즐겨 본 플레이어라면 익숙한 용어일 것이다. 문명4에서는 중상주의를 경제 정책으로 선택하면 모든 도시에서 외국과의 무역로가 차단되는 대신, 각 도시에 무료 전문가 1명이 배정된다. 무역을 차단한 대가로 ‘전문가’라는 내부 인재를 활용하게 되어, 위대한 인물 출현 확률이 높아지고 도시의 생산성과 문화력이 오르게 된다. 게임에서는 나름의 트레이드오프 구조가 존재한다. 외부 수익은 포기하되, 내부 역량을 강화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같은 메커니즘은 문명 시리즈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경제정책 하나가 문명 전체의 발전방향을 좌우하고, 선택의 무게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깔끔하고 단순한 보상체계는 현실 경제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의 중상주의적 정책은 오히려 실업과 디플레이션이라는 구조적 위험을 수반하며, 경제 전반에 장기적인 침체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중상주의와 현대의 보호무역주의

중상주의는 본래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열강이 채택했던 경제 사상이자 정책이다. 국가의 부를 금과 은, 그리고 식민지를 통한 무역흑자로 판단했기에, 외국으로의 자본 유출을 억제하고 자국 내 생산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당시 제국주의적 경쟁 구도 속에서 효과를 발휘한 측면도 있었지만, 결국 지나친 폐쇄성과 생산비 비효율성으로 인해 시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21세기에도 중상주의적 사고는 다양한 형태로 되살아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2017년 이후 중국, 유럽연합, 캐나다 등 주요 교역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제품을 조달하거나 공장을 운영하는 방식보다는, 자국 내에서 생산하고 자국민을 고용하는 구조를 강제하려 한 것이다. 이런 정책은 문명4의 중상주의처럼 외부 무역을 차단하고 내부 역량에 의존하는 형태로 볼 수 있다.


고용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이러한 정책의 가장 큰 명분은 국내 고용 창출이다. 관세를 부과하면 외국산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고, 그 결과 자국 제품이 경쟁력을 갖게 되어 내수 생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따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우선, 제조업은 이미 자동화가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는 분야다. 과거처럼 대량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제조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온다고 해도, 고용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의 통계를 보면, 2018~2019년 기간 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화되었음에도 제조업 고용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일자리가 늘지 않으니 가계의 총소득도 증가하지 않았고, 소비 여력 또한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보호무역은 외국의 보복 조치를 야기하여, 오히려 수출시장까지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미국 농산물의 경우, 중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수출이 급감했고, 이는 관련 산업의 고용 감소로 직결되었다. 즉, 의도했던 고용 창출은 실현되지 않고, 오히려 일부 산업에서의 고용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18년 보호무역 이후 고용 상황 (잠깐 늘었다 다시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급 충격 후 소비 침체, 디플레이션 압력

보호무역은 단기적으로는 공급 충격을 유발한다. 해외에서 저렴하게 수입되던 원자재나 중간재의 가격이 급등하면, 기업은 생산비용이 높아져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인플레이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소비자가 가격 인상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이나 고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요는 빠르게 위축된다. 기업들은 재고가 쌓이고, 매출이 줄어들며, 추가 고용이나 투자를 미루게 된다. 결국 전반적인 경기가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은 빠르게 디플레이션으로 전환될 수 있다. 가격은 떨어지지만, 이는 수요 위축에 의한 것이므로 소비자에게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일본도 내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비관세 장벽을 유지했지만, 결국은 경쟁력 저하와 수요 부진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보호무역은 내부 산업을 ‘지키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성장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기 쉽다.


게임은 보상을 주지만, 현실은 대가를 요구한다

문명4는 중상주의 정책을 선택할 때 무역의 이익을 포기하지만, 그에 대한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보상(무료 전문가)을 제공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체감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보상이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무역을 차단하면 그만큼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그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 경제에 전가된다.

현실의 중상주의는 무료 전문가 대신 불확실성, 고용 정체, 소비 위축, 기업 투자 감소, 그리고 디플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리스크를 남긴다. 이것이 바로 게임과 현실의 가장 큰 간극이며, 우리가 정책을 바라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결론

문명4의 중상주의는 매력적인 게임적 선택지다. 외부 수익을 포기하고 내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은 종종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 경제에서는 중상주의적 보호무역 정책이 의도한 고용 증가를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의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책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그 결과는 단순한 수치나 이론이 아닌 실제 삶 속에서 체감된다. 문명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한 번쯤은 이런 현실의 무게를 되새겨 보며 게임 속 정책 선택을 다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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