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포도를 좋아합니다. 한 입 크기의 달콤한 열매를 집어 입에 넣고 씨를 가려내지 않아도 되는 그 편안함.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잘 먹는 게, 요즘 씨 없는 포도입니다.
어느 날, 누군가 말합니다.
“그거, 지베렐린 처리된 거예요. 호르몬이라던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는 포도를 내려놓고 누군가는 검색창을 켭니다. 그리고 '지베렐린'이라는 낯선 단어가, 어느새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바뀝니다.
지베렐린은 사실, 자연의 일부입니다
지베렐린은 농약도 아니고, 독극물도 아닙니다. 오히려 식물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연의 성장 호르몬입니다.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만드는 바로 그 물질이죠.
포도농사에서는 이 지베렐린을 포도 송이에 아주 소량 처리해, 씨가 형성되기 전 열매가 잘 자라게 도와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씨 없는 포도’입니다.
이 물질은 우리 몸의 호르몬 체계와는 작용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사람의 몸에서 흡수되더라도 특별한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간에서 대사되어 배출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그리고 우리나라 식약처까지 인체에 해가 없다고 명확하게 인정한 물질입니다.
하지만 불안은 이성보다 빠르게 작동합니다
어떤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없는 게 낫지 않아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부모니까요. 아이가 입에 넣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부모입니다.
하지만 ‘없다’는 말이 꼭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무지베렐린 포도’라는 문구를 보면 괜히 지베렐린은 안 좋은 것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아무 해가 없음에도, 말의 분위기와 이미지가 마음을 흔듭니다.
그렇지만 정작 무지베렐린 포도는 크기가 작고, 모양이 고르지 않으며, 쉽게 상하는 단점이 있어 유통과정에서 낭비가 크고, 가격도 높습니다. 오히려 일반 소비자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있어서 만든 포도입니다
나는 지베렐린을 씁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포도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꾼에게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가’는 최고의 기준입니다. 지베렐린은 그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수많은 검사와 검증을 통과한 기술이었습니다.
우리 부모세대는 화학비료와 농약이 일상이던 시절을 견뎠고, 우리는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과일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불안해하고 있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과학입니다, 그리고 사람입니다
지베렐린은 ‘처리’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처리’에는 오히려 더 많은 안전성 검사, 사람의 노력, 그리고 책임감 있는 선택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어떤 농부가 지베렐린을 불안해하며 이렇게 질문한다면,
“당신은 그 포도를, 당신 아이에게 먹일 수 있습니까?”
나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 매일 도시락에 담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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