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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애도를 강요하는 한국사회

by 인생오십년 2024. 12. 31.



한국 사회는 공동체적 가치와 유대감이 강한 문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때때로 지나친 집단주의로 변질되어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억압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애도와 같은 민감한 주제에서 한국 사회는 사회적 강요와 암묵적인 압박을 통해 모든 개인이 일률적으로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는 부담을 준다. 이는 감정의 다양성과 개개인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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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강요가 드러난 제주항공 추락사고

최근 발생한 제주항공 추락사고는 이러한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언론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대중의 감정을 자극했다. 물론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공감과 애도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슬픔을 느끼고, 같은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준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언론과 대중의 애도 경쟁
사고 이후 소셜 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는 "애도를 표하지 않으면 비정한 사람"이라는 식의 여론이 확산되었다. 이는 단순히 사고에 관심을 갖고 애도의 글을 쓰는 것을 넘어, 누가 더 진심으로 슬퍼하는지를 비교하는 일종의 감정 경쟁으로 번졌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사고와 관련 없는 게시물을 올리거나,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이면 "사회적 책임감이 없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런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고, 마지못해 애도를 가장하도록 만든다.

기업과 정부의 공식적인 애도 선언
기업과 정부도 이런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기업은 공식 성명을 발표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지만, 이러한 행동은 진정성보다는 면피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부 역시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책 발표를 미루거나, 대형 사고와 관련된 이미지를 강조하는 등 대중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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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게임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

이와 같은 집단적 애도의 강요는 영국 작가 윌 스토의 책 지위 게임(Status Game)에서 언급한 "도덕 게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도덕 게임이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심리적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을 의미한다.

도덕 게임의 작동 원리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애도를 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애도가 진정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나도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SNS에 인증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공감하는 척하며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집단적 도덕성을 강요하는 분위기
도덕 게임은 개인의 도덕성을 강요하며, 집단적 압박을 통해 모든 이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는 애도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며, 결과적으로 비자발적이고 위선적인 애도를 양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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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

애도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슬픔을 느끼고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애도를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다.

애도의 시간과 방식은 다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사건 직후 즉각적으로 슬픔을 느끼고 애도를 표현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감정을 정리하고 애도를 표할 수 있다. 또한 누군가는 말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행동으로 애도를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바로 지금, 모두가 한마음으로 슬퍼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한다.

비애도의 자유
모든 사람이 사건에 대해 동일한 감정을 느껴야 할 의무는 없다. 비극적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개인이 느끼는 슬픔의 정도는 사건과 자신의 직접적인 연관성, 개인적 경험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비애도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슬퍼하지 않느냐"는 비난과 함께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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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강요의 사회적 부작용

애도를 강요하는 문화는 사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

1. 정서적 피로감
반복적으로 집단적 애도를 요구받는 사람들은 정서적 피로감을 느낀다. 특히 대형 사고가 잦은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강요는 개인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2. 위선적인 행동의 확산
애도의 진정성이 평가받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는 상관없이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도의 모습을 가장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 신뢰를 저하시키고, 애도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3. 사회적 갈등의 심화
애도의 강도가 부족하거나 애도를 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집단으로부터 비난받으며,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애도의 방식과 수준에 대한 차이가 더 큰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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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공감, 그리고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

한국 사회는 애도와 공감의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애도는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존중하며, 각 개인이 자신의 방식대로 슬픔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공감은 강요할 수 없다
공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강요된 공감은 오히려 상대방의 고통을 가볍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공감은 각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애도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슬픔을 표현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조용히 간직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압박 완화하기
정부, 언론, 그리고 대중은 집단적 애도를 강요하기보다는 사건의 본질과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애도는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고, 사회적 강요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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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제주항공 추락사고와 같은 비극은 우리 사회가 공감과 애도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사회가 애도를 강요하는 문화를 넘어서, 각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진정한 공감과 연대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는 집단적 강요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마주할 자유를 허락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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