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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국장은 장소가 아니다' — 한국인의 집중 본능, 테슬라부터 국장까지

by Mansamusa 2025. 6. 13.

2025년 6월, 증권예탁결제원 사이트에는 놀라운 숫자들이 떠 있었다. 외국인 순매수 금액으로 보이는 이 화면엔 사실, 한국인의 감정과 자금이 쏠리는 지점이 드러나 있다. 테슬라(TESLA INC) 주식과 테슬라 2배 레버리지 ETF(DIREXION DAILY TSLA BULL 2X)가 나란히 상위에 랭크되었고, 그 옆엔 AI와 양자컴퓨팅을 상징하는 IONQ, 리게티 컴퓨팅, 그리고 옵션인컴 기반의 고위험 펀드들이 보인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해외 주식 결제 데이터가 아니다. 한국인의 집단적 불안과 미래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집중의 풍경’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영화 속 장면에서는 이런 대사가 흘러나온다. “국장은 장소가 아니다. 한국인이 모이는 곳이 바로 그곳이 국장이다.” 엄숙한 하늘 아래 서 있는 노인이 하는 이 말은, 더 이상 물리적 장소로서의 국립묘지나 조문장이 국장이 아님을 암시한다. 지금 이 시대의 ‘국장’은 유튜브 라이브, 실시간 스트리밍 채팅창, 혹은 광장 한복판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국장은 사람들의 감정이 집중된 장소’로 재정의된 것이다.

이 두 장면은 서로 무관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한다. 바로 **집중(concentration)**이다. 한국인은 지금, 돈을 테슬라에 집중하고, 감정을 가상의 장례식장에 집중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장소 없는 집중'**이자, 좌표가 없는 투사다. 이 집중은 현실을 벗어난 초점이자, 동시에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기제다.


1. 테슬라에 쏠리는 이유: '없는 곳'에 베팅하는 사람들

테슬라는 한국 MZ세대의 '미래 자산'이자 '가상 신화'다. 이 회사의 공장은 미국 오스틴, 독일 베를린, 중국 상하이 등에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투자자는 테슬라의 물리적 실체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오직 뉴욕증시의 'TSLA'라는 티커와, 유튜브 속 일론 머스크의 인터뷰, 그리고 트위터의 급등·급락 캡처를 통해 이 기업을 소비한다.

한국인이 집중적으로 매수하고 있는 테슬라 2X ETF는 하루 등락폭이 10%를 넘나드는 초고위험 자산이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투자다. 한국인의 테슬라 투자 열풍은 단순한 기술 낙관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충동',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떤 미래에 자신을 연결시키고 싶은 욕망'**이다.

정작 한국의 청년 세대는 내 집 마련도 어렵고, 경력 개발의 좌표도 불안하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테슬라는 말 그대로 **'미래를 위탁할 수 있는 상징 기호'**가 된다. 공장도 없고, 직원도 없고, 생산량도 모호하지만, '자율주행'과 '로봇 택시'와 '슈퍼컴퓨터'라는 키워드가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한국인은 지금 '장소 없는 미래'에 몰빵하고 있다.


2. 국장은 어디에 있는가: 감정도 가상공간으로 이동 중

"국장은 장소가 아니다. 한국인이 모이는 곳이 바로 국장이다." 이 대사는 오늘날 애도와 연대의 방식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청와대 조문소, 국립묘지, 시청 앞 광장이 국장의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튜브 실시간 중계, SNS 해시태그 추모, 포털사이트 댓글란이 새로운 국장의 기능을 한다.

이 변화는 단지 기술적 환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해체'와 '정체성의 재조립'**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회적 전환기다. 한국은 더 이상 하나의 정서에 집중하는 국가가 아니다. 정치적 진영에 따라 슬픔조차 다르게 느끼고, 사망자에 대한 해석조차 갈라진다. 이 상황에서 '장소 없는 국장'은 정치적 중립도, 이념적 통일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이념이 동시에 투사되는 '감정의 광장'**이다.

여기서 문제는 집중이 가지는 피로감이다. 한 방향으로 몰리는 감정은 결국 대상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또는 소비성 정서로 바뀐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의 죽음은 조문보다 댓글 전쟁을 촉발하고, 장례는 애도보다 SNS 검색어 경쟁이 된다. 국장이 장소가 아니게 된 순간, 우리는 국장을 소비하게 되었다.


3. 집중은 불안을 가린다: 경제와 의례의 공통 구조

돈이든 감정이든, 한국인은 '어디에 모일 것인가'를 끊임없이 찾는다. 투자와 애도 모두 어떤 불확실성을 덮어줄 집중의 장치를 필요로 한다. 테슬라는 '이 나라에서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정서를, 온라인 국장은 '이 사회에서 공통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공허를 메운다.

하지만 집중은 동시에 취약성이다. 하나의 종목에 몰빵한 투자자는 큰 수익과 함께 큰 손실도 감수해야 하고, 하나의 감정에 몰입한 공동체는 다른 의견을 적대하거나 배제할 위험이 크다. 즉, 집중은 공유된 기대이면서도 폭발하기 쉬운 구조다. 한국 사회가 지금 가장 취약한 구조가 바로 이 ‘과잉 집중’이다. 공론장도, 자본 시장도, 정치 담론도 점점 양극화되고 있다.


4. 그럼에도 우리는 집중할 것이다: 좌표를 잃은 사회의 본능

그렇다면 해답은 분산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은 원래 집중하는 동물이다. 공동체를 만들고, 상징을 부여하고, 감정을 동기화시켜 위기를 돌파한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장소로, 어떤 질서로 집중되는가다.

세종시가 한국판 워싱턴 D.C.가 되겠다는 담론은 그런 맥락에서 흥미롭다. 그것은 '정치적 집중'을 서울이 아닌 중립지대로 옮겨 분산하려는 시도이자, 물리적 공간이 해체된 시대에 다시 '국가적 좌표'를 만들어보겠다는 상상력의 실험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국장은 유튜브와 SNS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실제로 함께 추모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5. 결론: 숫자와 장소가 사라진 시대, 새로운 집중의 윤리를 고민해야 할 때

한국인은 지금 '장소 없는 집중'에 살고 있다. 투자도, 의례도, 정치도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좌표 안에서 일어난다. 테슬라 주식과 국장 자막은 둘 다 우리의 감정이 어디로 모이고, 왜 거기에 모이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다.

하지만 그 집중은 우리의 불안에서 나온 것이며, 그래서 위험하다. 우리는 이제 '어디에 모일 것인가'를 묻는 대신, **'어떻게 함께 모일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분산과 집중을 조화시킬 것인가'**를 묻기 시작해야 한다.

결국, 국장은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이제 어디든 국장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어디든, 우리 모두의 투자처이자, 애도처이자, 희망의 출발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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