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전 기사들을 펼쳐보면 익숙한 문장이 반복된다.
“국가 빚이 위험하다.”
“재정적자가 한계에 다다랐다.”
“미래 세대가 빚의 고통을 떠안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문장은 세대를 건너뛰어 거의 복붙처럼 등장한다. 1980년대 한국 언론에서도, 1990년대 일본 버블 붕괴 직후에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러나 현실을 보면 국가의 빚은 줄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시스템은 붕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시장은 더 커지고, 자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상승한다. 그렇다면 왜 “부채 공포”는 반복되고, 또 왜 현실은 그 반대의 궤적을 보이는가?
1. 선조의 빚은 결국 우리가 갚는다
가계의 빚은 상속되면 개인에게 파산이라는 리스크로 귀결되지만, 국채의 성격은 다르다. 국가의 빚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형태로 ‘리셋’된다. 전쟁 직후 발행된 국채, 외환위기 직후 찍은 공적자금 채권, 코로나 시기 증발한 재난지원금 재원 모두 “우리 세대가 결국 세금으로 갚아나간다.”
그런데 묘한 점은, 늘 “파국이 온다”는 예언과 달리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미래 세대는 이전 세대가 남긴 부채를 세금·성장·인플레이션이라는 방식으로 흡수하며 살아간다. 선조의 빚은 우리가 이미 갚고 있고, 우리의 빚 역시 미래 세대가 또 다른 형태로 정리한다. ‘국가부채 파산론’은 그 자체로 반복되는 담론일 뿐, 실제 시스템은 그것을 순환 구조로 소화한다.
2. 미국의 부채는 왜 더 의미가 없는가
한국은 원화를 찍어낼 수 있지만 글로벌 기축통화가 아니다. 반면 미국은 달러를 발행하는 국가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미국이 국채를 발행하고 빚이 불어나도, 전 세계는 오히려 그 달러 자산을 보관하려고 한다. 글로벌 은행의 준비자산, 각국 외환보유액, 국제 무역의 결제수단이 모두 달러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부채는 숫자로 보면 “천문학적 위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달러 시스템 전체가 그 빚을 떠안고 “달러라는 상품”을 더 깊게 시장에 공급하는 과정이다. 미국이 돈을 찍어 빚을 갚는 구조가 인플레이션을 직접 유발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찍어낸 달러가 국민 개개인의 소비지갑으로 흘러들지 않고, 금융시장의 심장부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3. 돈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 인플레가 오지 않는 이유
전통적인 경제학은 “통화량 증가 →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순한 메커니즘을 강조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의 현실은 다르다.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풀면, 그 돈은 곧장 물가에 불을 붙이는 대신, 자산시장으로 이동한다.
비트코인, 주식, 채권, 부동산, 그리고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까지. 돈은 실물 소비가 아니라 ‘투자 상품’에 묶인다. 국민이 돈을 ‘쓴다’기보다 ‘담아둔다.’ 이 때문에 달러는 풀려도 소비자 물가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인플레 압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대신 자산시장 거품 논란이 반복된다. 결국 “돈이 묶이는 구조”가 오늘날 금융 시스템의 본질이다.
4.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돈 묶는 장치
스테이블코인 발행 열풍을 단순히 크립토 산업의 성장으로만 보는 것은 좁은 해석이다. 본질은 달러 유동성을 또 다른 그릇에 가두는 장치다. USDT, 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1:1로 교환 가능하지만, 실제론 탈출구가 제한적이다. 많은 돈이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디파이, 거래소, 해외 송금 채널에 묶인다.
즉, 이는 달러의 디지털 국채화다. 정부가 국채를 찍어 돈을 묶는 것과 같은 효과가 스테이블코인 민간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인플레 방지판”이자 “유동성 흡수기”로 작동한다. 미국 입장에서도 오히려 반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5. 조정은 오지 않는다 – 시장 심리의 현실
“이번엔 반드시 조정이 온다”는 주장은 늘 시장의 일부가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현금을 들고 대기 중인 투자자들은 하락을 원한다. 싸게 사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대기 자금’ 때문에 조정이 오지 않는다.
지금은 누구나 현금을 장전해두고 매수 타이밍만 기다린다. 옆집 강아지 뽀삐조차 “나도 저점 매수 준비 완료”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심리적으로 매수세가 압도적으로 대기하고 있기에, 하락은 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잠깐의 조정은 순식간에 매수세로 흡수된다. 시장이 진정한 붕괴로 빠지기 위해서는 ‘현금 보유자가 포기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6. “오늘이 제일 싸다” – 반복되는 역설
결국 국가 부채 담론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언론은 위기를 말하고, 학자들은 한계를 경고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장은 그 빚을 자산화하고, 새로운 금융 기구로 묶어내며, 다음 사이클로 넘어간다. 미국은 달러 기축 체제를 활용해 빚의 의미를 무력화시키고, 한국 역시 성장과 세대를 통한 순환 구조로 흡수한다.
투자자들에게 남는 교훈은 단순하다. 오늘이 제일 싸다.
조정을 바라는 목소리는 늘 있었지만, 조정은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매수세에 순식간에 흡수됐다. 역설적으로 ‘위기론’이 넘쳐날수록 현금 대기 자금은 더 늘어나고, 그 돈은 결국 다시 자산시장으로 밀려 들어온다.

결론
국가 부채의 숫자에 겁먹을 필요도, 조정을 무조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다. 지금의 유동성은 소비가 아니라 자산시장으로 집결하고 있고, 스테이블코인 같은 새로운 장치는 돈을 더 깊이 묶어둔다. 미국은 달러를 통해 부채를 무력화시키고, 한국은 세대 교체와 성장으로 흡수한다.
따라서 오늘의 결론은 단순하다.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채권이든 – 오늘이 제일 싸다.
내일은 더 비싸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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