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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전국여행기

다시쓰는 전국여행기 2일차

by 인생오십년 2020. 10. 3.

 

우리나라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찍은 사진이었다. 구름을 보니 쉽게는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예전에 자전거로 전국일주 할 때도 비가 미친듯이 왔었다. 여름에 여행가게 되니 항상 비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비오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비 맞으며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때는 젊었기에 그런 몰골로 돌아다녀도 자신감이 넘쳤다. 

 

하여튼 전주에서 5시에 출발한다는 생각은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다. 절대 못일어난다. 결국 알람끄고 일어났더니 8시 반 이었다. 잠자리가 편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때 당시 아직도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과대 평가 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멍청하다고" 딱 그 꼴이었다. 그 때의 나는 자신감만 가득차서 깊이 생각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사업에 대해 접근할 때 적어도 1년 이상 시뮬레이션 했어야 했다. 지금 시점에서도 섣부르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때의 실패로 나는 두려움을 얻었고,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다시 여행 얘기를 하자면, 역시나 늦게 출발해서 아침부터 전주시내 차가 너무 많았다. 아무래도 배기량이 낮은 스쿠터였기에 가속도 안 되고, 빠른 속도도 못 내기 때문에 차가 많으면 그만큼 양보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지체된다. 같은 거리라도 도심은 거의 자전거 속도다. 만약 영화에서 처럼 클래식 바이크였다면 도심에서 조금 더 당당하지 않았을 까? 게다가 이 스쿠터는 위험하고 주변 차들이 눈치는 또 엄청준다.

 

그래서 또 시골길을 찾아 17번국도로 가기로 했다.

 

 

 

내가 말한다.

 

"여행은 되찾은 자유에 대한 증명이다."

 

 2년동안 억눌린 생활을 청산하고 이렇에 여행다니니 좋긴 하다만, 내가 뿌려놓은 똥들과 내가 알고 있는 훈련계획에 따라 시행할 훈련에 괜히 미안해진다. 군일일 때는 너무 싫었었다. 각종 검열, 순찰, 예정에 없는 훈련 등, 항상 나를 억압했었고, 군대가 싫은 이유였다. 심지어 차도 못 사게 했다. 차를 사려면 연대장까지 허락을 맡아야 했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내 돈으로 내가 사는데 못사게 한다니. 그 정도로 군대는 개인에 대한 억압이 심했다. 그리고 주말에 놀러가는 것도 엄청난 제약이 있었다. 언젠가는 같이 일하는 부사관(중사)과 스키장에 놀러간 적이 있다. 아마 그 사람도 어지간히 같이 갈 사람이 없었나보다. 스키장에 도착해서 장비 다 빌리고 리프트타고 올라가는데 대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물어봐서 부대 근처에서 술 마신다고 거짓말 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술 한잔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 자리에서 리프트 다시 타고 내려왔다. 싹 반납하고 1시간 만에 부대 도착하니 대대장이 피곤해서 안 온단다. 아마 우리가 어디 간지 알고 전화한 것이겠지. 

 

 그 시절 이런 기억들을 회상하다 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그 자유에 대한 상징이 바로 이 여행이었다. 자유를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를 얻고 혼자 있게 되니, 군인일 때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 졌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조금만 혼자 있어도 외로움이 느껴졌다. 2년 동안 익숙해져버린 것이겠지 사람들 속에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진입 금지라고 해서 못들어가고 멀리서 찍어봤다. 작은 폭포같은데 사유지인가보다.

 

주인이 소인배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사람이 개념이 없어서 막아둔지 모르겠지만 저런 경관을 자기 혼자만 보는 것은 좀 아쉽긴 하다. 카메라가 망원렌즈였다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하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곳에 차박 캠핑장을 만들면 참 좋을 것 같다. 화장실과 샤워시설 정도만 갖춰두고 입장료 2만원 정도만 받아도 크게 돈은 못 벌어도, 이렇게 방치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더 나아간다면 데스티네이션 차저만 설치하고 테슬라 전용 차박 캠핑장을 열어도 좋을 것 같다. 

 

 

전주에서 26번국도 타고 수선루 가는길에 찍은 사진이다. 경사가 엄청나다. 이런 길 때문에 자전거는 안 된다. 아마 자전거 타고 갔으면 허벅지 터졌을 것 같다.  여기는 뒤에 강원도 빠져 나올 때 느낌이랑 약간 다르다. 좀 더 부드러운 느낌? 강원도 빠져나올 때는 그 위엄에 압도당한다.

 

 드디어 끝나고 진안 진입! 사실 진안이라는 지명은 태어나서 처음봤다. 사실 이것 보면서 예전에 후보생 때 논산에서 전라남도 내려가는 행군코스 생각났다. 사실 그 시절에는 행군 만큼 좋은 훈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걷기만 하는게 뭐가 힘들어? 라고 했지만 사실 그 때는 가라 군장이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 것이었고, 입대하고 진짜 제대로 완전군장해서 가다보니 미친듯이 힘든 것이 행군이었다. 나는 내가 행군에 특화된 군인 체질인 줄 알았었다. 

 

 

 처음에 수선루 도착해서 "이게 수선루야? 완전 새거에다가 볼게 없는데?" 이런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뒤에 뭔가 비석이 있었다.

 

이 건물은 수선루가 아니다.

 

그럼 비석은 여기 있고... 수선루는 어디있는거지? 산속으로 길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라갔더니...

 

역시나!

 

 

 

바위 틈에 껴있는 것이었다!!

 

 

수선루 올라가는 계단이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듯 하다. 문화재인데 이 정도로 방치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마치 귀신이 나올것 같지 않은가?

 

사실 위로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올라가진 않았다. 또 문화재인데 내가 회손할까 겁도 났다. 아무도 없고 여기서 죽으면 누가 날 찾는단 말인가. 혼자가면 진짜 무서운 곳이다.

 

게다가 에어콘 바람처럼 찬바람이 저 문안쪽에서 나와서 순간 소름이 돋는다. 분명 안으로 들어가서 위로 올라갈텐데.

숙종 시기라면 붕당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시작은 선조부터 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숙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시절 선비놈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학 발전쪽으로 부가 집중되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다시한번 망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붕당 정치나 하면서 기초과학 쪽으로 전혀 발전 하지 못하고 성리학 사상에만 사로잡혀있었기에 개화기 때 빌빌거리며 자멸했던 것이다. 어떤 나라가 전쟁 한번 못해보고 식민지가 되는가? 심지어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전쟁을 하며 최후의 항전 끝에 식민지가 되었다. 지금도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식민지 상태다. 국가 역량을 기초과학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이 식민지 상태는 영원히 지속 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좌우로 갈리며, 북한에게 원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좌우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북한에게 원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관심이 필요하다. 좌파에서 북한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우파에서 북한으로 위기감 조성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다. 그냥 신경 끄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망할 나라다. 관종에게 자꾸 관심을 주면 더 날뛰는 법이다. 

 

 내려오면서 찍은 섬진강과 수선루 앞 사원

 

 

17번 국도를 타려면 임실을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임실 치즈 농협을 들렸다. 저게 4천원 짜리 요구르트다.(아마 요즘은 많이 올랐을 것이다.) 맛은 완전 찐하다. 근데 문제는 1일 권장량이 100ml인데 500ml들어 있다는 것이다. 남기고 가자니 상할 것 같아 어쩔수 없이 먹었다. 그때부터 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심은 굶었다.

 

 

 

국도타고 내려가다 보면 혼불 문학관이라고 보인다. 처음에 뭔가 싶었는데,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에 대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도서관 리모델링 할 때 혼불 훔쳐온게 생각나서 들렸다. 하지만 2011년도 이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완전 황폐화 되었다. 

 

 

 서도역이라고 재현해 놓은 곳. 여기서 좀 자고 가려고 했는데 웬 기독교단체가 왔다. 시끄러워서 못잤다. 지금이나 그 때나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요즘은 미드 루시퍼를 보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안 좋은 일을 겪으면 신을 거부한다. 하지만 또 너무 힘들어지면 신을 찾으며, 신이 도와서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일 뿐이다. 그 사실을 그 드라마에서도 "댄"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룬다. 댄은 자신이 사랑하던 샬럿이 어처구니 없게 죽고(착한 일을 하려다 죽음)신을 거부하고 그 일에 대한 탓을 남에게 돌린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시즌5가 되면서 자기계발 서적등을 통해 마음가짐이 변하며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신이 있건 없건 자기 마음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자기 자신이 어떤 마음 상태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활동 같아서 싫어한다. 결국 나에게도 신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명희 기념탑 

 

 서도역 복구한다고 이런것까지 만들어놨다.

 

 

 혼불의 명대사를 이렇게 기념비로 만들어서 그럴듯해 보인다. 나중에 나도 이런거 만들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인생오십년... 세상에 비하면 꿈과 같은 것."

이렇게 쓸 계획이다. 안 되면 내 묘비명으로 써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세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밑에 내려가는 길에 광한루 들릴 수 있어서 잠깐 들렸다. 광한루 입구에서 찍은 사진. 

 

사실 이것보다 사진 더 잘 찍었는데, 여기 올리면서 좀 흐릿해졌다.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찍혔지만 저 누각위에 할아버지 할머니 많이 계신다. 뻘줌해서 들어가지도 못했다. 

 

 

 나중에 여친이나 와이프와 다시 온다면 타고 싶다. 하지만 다시 갔을 때 탈 생각을 못했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광한루 안쪽으로는 못들어가게 해놨는데, 어떤 카메라 아저씨가 들어가서 혼났다. 

 

 

마침 지나가는 가족이 사진찍길레 찍어달라고 했다.

 

사실 선청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막상 선천적 장애인을 마주하면 측은한 생각이 드는것은 어쩔수 없나보다. 그래도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것을 임신했을 때 알았다면 낙태하는 것이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낙태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건 예외일 뿐이다. 임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으려면 피임 못한 당사자가 죽어야지 왜 죄없는 애를 죽이나? 그런 의미에서 사촌형 사고 쳤는데 가족 모두 욕할 때 나는 사촌형이 그래도 사람이 됐네 하고 생각했다.)

 

관리 잘되고 있는 한옥은 끝 마무리만 봐도 알 수 있다. 

 

비온 직후라 물이 좀 탁하다.

여기서 광해 찍었다고 한다. 광해에서 인상 깊은 것은 호위무사가 죽을 때.

 

 

 

 

 

잉어가 잘 먹고 자라서인지 엄청 크다.

 

 춘향관, 별거 없지만 에어컨 빵빵해서 더울 때 들어가 있으면 좋다. 순간 에너지 절약하던 습관이 떠올라서 씁씁했다. 군대에서는 에어콘도 제대로 못 틀게 하는데......여기는 아무도 없어도 추울 정도로 틀어 놓는다. 이런데서 국세 낭비하지 말고 장정들을 위해 넉넉하게 예산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최근 예비군 훈련 갔을 때 보니까 요즘 군대는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놓더라. 나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후에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더니 아픈 거위라고 한다. 털 관리 못하는 것은 병있거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섬진강 자전거길 앞에서, 언제 어디를 가도 즐겁다. 참을 수 없는 자유의 즐거움!

 

섬진강

 

 

오늘의 거리 155Km 기름값 14000원, 기름값 은근히 많이 먹는다. 오히려 배기량이 적어 출력이 안 나오기에 연비가 더 안 좋은 것 같다. 사실은 곡성군으로 왔지만 거리상 별 차이가 안나서 그냥 이 지도를 올려놓았다.

 

자전거 여행 할 때 섬진강을 왔어야 했다. 길도 잘 나있더만. 물론 그 당시엔 없었을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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