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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전국여행기

다시쓰는 전국여행기 8일차

by 인생오십년 2021. 2. 16.

 

포항의 모습, 날씨도 흐린데 공장 연기까지 더해지니 암울하기 그지없다. 포항의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깔끔한 이미지였지만 공기가 그렇게 좋진 않았다. 거주하시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사람살기에 좋진 않은 것 같다. 게다가 포항은 우리나라에서 평균소득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물가도 다른 도시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다.  

 

 

 

포스코 가는길에 기념물을 찍었다.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드디어 포항의 상징 포스코 본사에 도착했다. 

 

 

사실 포스코 역사관을 보러 왔다. 포항에서 딱히 할 만한게 없었기 때문이다.  

 

 

 포스코 역사관 전경이다. 

 

 

내부 역사관 주 목적은 박정희와 포스코 초대 회장 자랑이다. 사실 면접 볼 때 보수적인 이미지를 가미하기 위해 포스코 초대 회장을 존경한다고 말했었다. 실제로 약간 존경하기도 하지만 사람들 입맛에 맞추다보니 그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일론머스크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대답을 택했다. 그리고 실제로 먹히기도 했고. 원래 사람은 자신이 보고싶은 현실만 본다.

 

 

 

근데 내가 영어를 못해서 이해를 못한것인가?

 

이제서야 안 사실이지만 Nothing is impossible 이나 Impossible is nothing 이나 비슷한 뜻이다. 

 

그 당시에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내 오만이었다. 

 

 

이건 내가 주식하면서도 처음 알았던 사실이었다. 이 당시 미국주식에 투자가 가능했다면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텐데... (가능하긴 했지만 수수료와 절차가 복잡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행할 생각하지말고 테슬라 주식이나 사 놓을 걸 하는 후회가 있다. 하지만 이 여행도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여행이었기에 비슷한 가치라고 본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주식으로 수익률 30%이상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던 때라서 아마 테슬라 주식을 샀어도 폭등 한 번에 팔았을 것이다. 지금 기억 그대로 타임슬립한다면 모를까, 몇번을 다시 산다고 해도 똑같은 결과일 것이다. 

 

 

내부 장식물 중 하나다. 포스코를 뒤로 하고 다시 바이크에 올라탔다.

 

 

 

9000Km 기념 사진이다. 겨우 800km 탔는데 오토바이가 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토바이는 1만 정도만 타도 많이 탄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을 알았다. 차로 치면 한 10km 탄 느낌이라고 할까? 

 

포항에서는 점심을 가볍게 파스타 먹고 (가격은 무겁지만...) 바로 출발했다. 이 때 먹는 파스타가 뚝배기 파스타인데, 아직도 그 맛이 그립다. 정말 맛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저 그렇다고 느꼈었다. 왜냐하면 파스타를 많이 안 먹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요리해도 그 맛을 복구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식당을 가도 그때 먹었던 파스타 맛을 되찾을 수 없었다. 

 

이제 목적지는 울진이다. 약 100Km 떨어져 있었지만 금방 갈 수 있었다고 믿었다. 

 

바다는 동해를 와야 한다.

 

 

울진 가는길에 해수욕장이 엄청나게 많지만 사람은 한명도 없다. 물이 너무 차갑기 때문이다. 얼음물 같았다. 게다가 장마기간이라 별로 덥지도 않았다.  

 

 

 

맨날 서해바다만 보고 살아온 나는 이렇게 깨끗한 물이 부럽기만 하다.

 

 

어딜가도 이렇게 맑은 바다를 볼 수 있다. 제주도 가면 더 맑다는데 개인여행으로 한 번도 못 가봤네.

 

 

비도오고 여기 자체가 별로 덥지 않다. 오히려 추웠다. 그래서 옷을 껴입고 다녔다. 

 

 

저녁으로 보리밥을 먹었다. 점심 때 먹은 파스타가 느끼해서 좀 담백한 밥을 먹고 싶었다. 원래 보쌈 정식 먹고 싶었지만 1인분은 안 판다고 해서 간신히 찾았다.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맛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도시는 괜히 물가만 비싸고 먹잘것도 별로 없고 여행하기는 별로 안 좋은 것 같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살기에도 도시는 별로 좋지 않다. 기껏해야 배달하면 뭐든 오는 정도? 나야 어차피 배달음식을 싫어하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없어도 되는 부분이다. 애들 교육도 시골 초등학교가 지원이 훨씬 좋다고 한다. 물론 큰 병원이 없어 큰 병이 걸렸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갑자기 큰 병이 걸리지 않는다. 

 

마치 자동차가 언제 고장날지 모르니 아무 정비소나 갈 수 있는 현기차를 사야해!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인 것 같다. 사실 자동차를 타다보면 고장나는 일은 손에 꼽는다. 특히 새차라면 거의 5년간은 고장이 안 난다. 만약 나더라도 AS 기간이기도 하고. 하지만 사람들은 "고장나면 어떡해? 수리비 어떡해?" 하면서 현기차를 산다. 마치 아프지도 않는데 아플까봐 큰 병원이 있는 도시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같다. 

 

또 도시에 살면 좋은 점으로 꼽는게 문화생활이다. 하지만 도시 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코로나 이전에 일년에 몇번이나 문화생활 하셨냐고...... 나는 와이프와 데이트 할 때도 미술관, 뮤지컬, 공연 등을 간 것이 손에 꼽는다. 생각처럼 자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 일이 있을 때 잠깐 시간내서 가면 그만이다. 굳이 도시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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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여행하면서 자산 관리할 정도면 다른 일 하면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군수과장 할때처럼 내 자리만 3G도 안 터지면 난감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월급도 받고, 금융쪽으로 일하면 관련 고객도 미리 선점할 수 있고, 나중에 판매할 때 좀 더 부드럽게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만약 농협에서 일하면 레버리지 전략을 쓸 때 대출관련 일을 내가 담당하게 되면 더 손쉽게 처리할 수도 있고, 고객들 투자금에 대해 계좌 관리 노하우라던가, 100원 짜리 묶을때 자동이체 같은 것에 대한 법률상식이라던가 종합적으로 나에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농협에 못 들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 주식 상담은 들어주고 높은 수익률도 안겨주지만, 만약 금융권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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