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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기억술 (Method of loci)

by 인생오십년 2020. 10. 20.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이자 학자인 마테오리치는 1596년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기억술에 관한 논문"이라는 짧은 책을 쓰는데, 리치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공부해야 하는 중국인들에게 가르쳐준 암기법을 기술한 논문이다.

 

리치의 기법은 심상에 "기억의 궁전"을 구축하는 중세 유럽의 기억술을 토대로 삼았다. 기억의 궁전은 중앙에 피로연장이 있고 그 주위로 많은 방이 둘러싼 구조의 웅장한 건축물인데, 방마다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생생하고 복잡한 이미지를 곳곳에 배치한다. 정서적 내용이 담긴 이미지가 무감정한 이미지보다 기억에 더 깊이 남는 까닭에, 이 방법은 기억해야 할 정보와 방 안에 배치된 이미지를 강렬하게 혹은 감정적으로 결합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명한 연합이 형성된다. 리치의 기억술을 현대적인 용어로 장소법이라고 부른다. 친숙한 길을 눈에 그리면서 그 길을 따라 표지물을 배치하고 그 각각의 지점에 기억해야 할 항목들을 갖다 놓는 방법이다.

 

 

기억의 궁전을 세워보자. 우선 친숙한 장소를 하나 고른다. 사무용 건물이나 집 근처의 상점 혹은 자기 집도 좋다.

 

예를들어 결혼 피로연 때 신부에게 할 축사를 암기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거기에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이야기, 중학교 때 체육시간, 고등학교 때 프랑스로 수학여행 간 이야기, 대학시절에 개를 키우게 된 일, 그리고 신랑과 만난 사연 등 구체적인 추억담이 들어갈 것이다.

 

기억의 궁전으로는 동네 슈퍼마켓을 선택해보자. 인사말에 들어갈 일화의 단서를 식품코너에 차례대로 끼워넣는다. 눈에 확 띄는 힌트를 슈퍼마켓 문에 붙인 뒤 과일, 채소, 정육, 냉동식품코너 순으로 힌트를 붙인다. 입구에는 유리문 대신 거대한 축구공이 놓여 있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거기에는 일곱 살 시절의 신부와 신부의 소꿈친구가 축구복 차림으로 두 손을 꼭 잡고 축구공 위에 앉아 있다. 과일코너가 나오면 신부가 속한 체조팀이 수박 위에서 물구나무 선 이미지를 떠올리고, 채소코너에서는 아스파라거스 순 끄트머리를 차지한 에펠탑을 떠올린다. 정육코너에서는 진열장 안에 실물 크기의 시베리안허스키가 다섯 근짜리 스테이크용 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이미지를, 냉동식품코너에서는 냉동칸 안에 신랑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거대한 냉동 양파튀김 자루를 들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러한 이미지를 구성하여 뇌리에 각인한 다음에는 심상을 통해 슈퍼마켓을 한 바퀴 돌면서 마음의 눈으로 기억 이미지들을 훑는다. 이제 축사를 시작하면 이 '기억의 슈퍼마켓'에 저장해놓은 추억과 일화를 특정 순서에 따라 인출해 쓰면 된다.

 

이 기억술은 연령에 상관없이 기억력 강화에 효과적이다.

 

2009년 연구진은 22세 공학도가 원주율의 첫540자리를 암기하는 학생을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의 장소법을 소개했는데, 기억의 궁전을 주로 색깔, 감정, 유머, 속어, 성적표현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감정적이고 끔찍한 장면일수록 기억하기 쉽다."

연구자들은 그 학생이 시종 고도로 감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남다른 뇌 구조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학생은 숫자군 암기에는 탁월했지만, 지능이나 기억력이 비상한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매우 효과적인 인지제어 회로가 발달하면서 정보 보유력이 높아진 것이었다.

 

"비범한 암기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 수잰 코킨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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