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이 세계가 죄로 가득 차 있고 천국은 오직 저 세계에만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삶이란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오직 우리가 지은 죄의 탓으로 돌린다.
우리가 그들의 함정에 말려들어 삶에 대해 불행한 느낌을 크게 가질수록 우리는 더 큰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점점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죽은 후에 벌어진다는 심판이나 지옥 같은 공상적 이야기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삶을 죽을 준비하는데 쓰는 이른바 '삶을 배신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보편적 선악의 잣대로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움츠려 들게 하는 도덕주의자들이나, 영원한 보편적 진리를 들먹이며 이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변화들의 가치를 무시하는 철학자들도 삶을 병들게 하는 놈들이다.
그들에게는 도덕도 진리도 하나의 보편적 명령으로서 부과되고 있을 뿐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도덕과 진리를 모두가 떠받들고 있다. 삶을 비난하는 기독교, 삶과 무관하게 정립된 보편적인 도덕과 진리들이 유튜브, 각종 커뮤니티를 떠돌며 대중들을 현혹하고 있다.
니체의 생각에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서구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논리라는 점이다.
이는 동양에서는 확연하게 차이가 들어난다. 바로 도덕의 출발점이 어디냐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서양에서는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없었을지 몰라도, 우리 세계의 도덕관은 모두 유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니체가 서술한 것처럼 삶과 어느정도 무관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동떨어져 탄생한 개념이 아니다.
반면 고대 그리스 문화에는 삶에 대한 긍정이 포함되어있다. 삶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해석은 삶이 고통이고 죄가 되고 심판으로 이어지는 기독교적 해석과 대비되었다.
그들은 고통의 원인을 삶에서 찾지 않고 죽음에서 찾았다. 더욱이 그들은 삶속에 죄를 개입시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이란 그 자체로 순진무구한 것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죄를 신들에게 돌렸다.
"그것은 내 탓이 아니다. 어떤 신이 나에게 들어와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죄를 다른 개체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기독교적으로 무조건 본인에게 돌리는 것도 문제가 있고, 남탓만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옳바른 것은 죄에 대해 재해석하여 분명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니체는 근본적으로 '처벌'에 대해 반응하는 사고에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했지만, 이는 현대 인간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개인적으로 대처한다면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처벌이 필요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던 것은 지상의 정신이었고, 그리스인들이 중시했던 것은 구체적 체험이었다.
그들에게는 초월적인 도덕이나 진리가 있을리 없었다. 도덕이나 진리는 그들 스스로의 긍지속에서 창조되었으므로, 각자가 그 주인이었다.
때문에 항상 그 결과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묻곤했고, 그 결과물이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해로운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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