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CPI와 실제 표시가격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 이유는 노동통계국이 헤도닉 기법을 활용한 품질조정을 어림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품질조정은 상품과 서비스가 전보다 확실히 개선되었다는 노동통계국의 판단 하에 개선된 품질만큼 비용을 가격 상승에서 제외하는 기법이다.
비슷한 예로 다양한 기능이 탑재된 최신 스마트폰 가격은 최소한의 기능뿐인 20년 전 휴대폰과의 품질 차이만큼의 비용을 차감해 책정하는 방식이다.
헤도닉 기법을 적용하는 바람에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CPI의 컴퓨터, 주변장치, 관련 용품의 물가가 무려 11%나 낮아졌다. 정보기술, 하드웨어, 서비스의 관련 범주에서도 물가가 같은 기간 연 5% 하락했다. 이러한 기술 제품이 기능, 속도, 사용자 편의성 측면에서 눈에 띄게 발전한 건 맞지만, 그 변화를 정량화한다고 해서 물가 상승이 완화되는 건 아니다,
최근 통계 전문 웹 사이트 스태티스타에서 표준 데스크톱 컴퓨터의 가격 추세를 주제로 심층분석한 내용을 보면, 위 내용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동일한 10년 동안 고객의 은행 계좌에서 인출된 청구액의 감소율은 CPI 산출에 반영된 금액 감소율의 겨우 30%였다. 다시 말해 순수한 가격 지수는 노동통계국에서 발표된 수준보다 훨씬 디플레이션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제품이 좋아진 건 맞지만 실제 가격은 그렇게까지 저렴해지지 않았다.
품질 조정과 저비용 생산국가에서 수입한 디플레이션의 결과로 공개된 CPI 수치는 양호했다. 연준이 자산 가격을 그렇게 부풀리고도 인플레이션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거림낌 없이 화폐를 발행했던 연준조차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다. 25년 간 내리 지속된 디플레이션이 끝나면서 내구재 물가가 급등했을 뿐 아니라 에너지 가격도 큰 반전을 보였다. 2000년 1월 이래로 에너지 물가가 연 3.35%씩 올랐다. 상식적으로 지난 20년간 물가가 2배 이상 뛴 것은 굉장한 인플레이션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에너지 물가는 크게 두 차례에 걸쳐 급등했다. 1차 때 연준은 문제를 외면했고, 2차 때는 허술한 목표제를 제시했다. 2008년 7월 유가 피크까지 8년 동안 에너지 지수는 연 11% 가까이 올랐다. 2012년 1월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입맛대로 설정한 이후로는 에너지 지수가 연 0.54%가량 하락했었다.
물론 이 21년에 걸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극심한 변동 주기는 연준 때문에 발생한 일은 아니었다. 2008년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 정점을 찍은 후로 10년 동안 연준은 로플레이션에 관해 안타까운 척하는 스스로의 태도에 떳떳했다.
실제로 유가 폭등이 이미 지수에 반영되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결국에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했던 유일한 동기는 2008년 7월 유가 피크 이후의 산술적 하락이었다. 유가 하락 추세는 전체 인플레이션 지수에 큰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2022년)은 대세가 바뀌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대유행이 오기 전 최고점에서 6.4%상승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연준은 명확히 규정되지도 않은 일정 기간 동안 2%라는 누적 평균치를 반영하는 측정법으로 전환했다.
이 대목에서 목표치를 훨씬 초과하는 현재 연 4~6%물가 상승률을 애써 감추려는 연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더 본질적으로는 애초에 버냉키가 추진한 인플레이션 목표 정책이 처음부터 허튼수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 접어들고 첫 10년 동안 날뛰었던 에너지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소비자 물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21세기가 되었을 무렵과 비교해 2021년 6월 가구 중위소득은 겨우 65% 오른 데 반해, 소비자가 지불하는 에너지 가격은 103% 더 증가했다. 그런데도 연준의 통화 신학자들은 인플레이션 목표가 아직도 달성되지 않았다고 우긴다.
문제는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과거에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2~4%였던 항목들이 지금도 2~4%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10년 간 PCE 디플레이터를 고정시키는 잧이었던 에너지와 내구재 물가 또한 공격적인 속도로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지난 9년 동안은 물가 하락세가 뚜렷했고 상승게는 기껏해야 미미한 정도로만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식품을 포함한 전반적인 상품 가격이 전년 대비 15.6%, 2년 누적 기준으로는 연 5%이상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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