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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진실이 아니라 믿음을 믿는다. (개딸이 되어가는 과정)

by 인생오십년 2023. 11. 29.

2012년에 펜실베니아 시골에 사는 18세 임산부 머랜다는 집에서 분만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마땅한 산파를 찾기 어려웠다. 

펜실베니아라니까 왜 동양인을 그려주는 거지?

그러다 한 명을 겨우 찾았다. 처음 만난 날 산파는 이런저런 가방과 책, 신문, 서류 등을 잔뜩 들고 왔다. 그녀는 머랜다를 다정하게 대했고 이상한 소리도 하지 않았다. 

 

산파 일을 10년이나 해 오고 자식을 여덟 명 낳은 그녀는 출산을 앞둔 산모가 믿고 따를 만한 사람 같았다. 

 

"그 여자는 안전하고 똑똑해 보였어요." 

 

머랜다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산파는 임신 몇 개월이죠? 아기 침대는 어디에 놓을거죠? 같은 일반적인 질문을 던지고는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아기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 건 생각해봤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백신 접종은 원래 하는 거잖아요. 전기 요금을 내거나 차에 기름을 넣는 것처럼. 그러더니 그 여자가 물은 거죠. '차에 기름을 넣지 않은 적 있어요? 그렇게 하려고 생각은 해봤어요?'라는 식으로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머랜다가 산파에게 말했다. 머랜다는 가만히 앉아서 산파의 말을 들었다. 현실에 대한 미개한 꿈이 거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산파는 첫 아이가 백신을 맞고 자폐가 되었다고 했다. 아이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 산파는 말을 이었다. 백신이 아이들에게 당뇨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는가? 엄마가 아이를 때린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아는가? 그리고 산파는 이렇게 말을 마쳤다. "어쨌든 마음을 정해야 해요. 전적으로 엄마에게 달려 있어요. 구글에 좋은 정보가 많이 올라와 있어요."

 

산파가 떠난 후 머랜다는 찾아보았다. 구글에 "왜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온갖 정보가 쏟아졌다. 아이들이 백신을 맞고 간질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는 블로그, 대형 제약회사에 관한 동영상과 의사들이 아이들에게 독약을 주사하고 받는 사례금에 관한 유튜브 영상까지. 

 

그리고 머랜다는 페이스북을 보았다. 

 

"페이스북은 방대했어요. 페이스북 그룹을 찾아서 가입하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요."

 

그중 하나가 '백신에 의문을 제기하는 위대한 어머니들'(한국버전은 안아키 카페)이라는 그룹이었다. 머랜다는 처음 글을 올리며 자신을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렁이에 민달팽이가 들러붙듯이 그룹 멤버들이 머랜다에게 모였다. 

 

"사람들이 제게 의견을 쏟아냈어요. '전 간호사였는데 해로운 접종 사례를 보았습니다.' '저는 애가 다섯이에요. 첫애에게 백신을 맞혔고, 이런 상태가 됐습니다. 이런 댓글들이 제 글에 많이 달렸어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머랜다는 점점 두려워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했다.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머랜다가 이 페이스북 그룹의 유혹에 넘어간 데는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만 작용한 것이 아니었다. "저는 원래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자들을 존경해요. 그 페이스북 엄마들을 보면서 경험 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들 저보다 훨씬 똑똑했어요! 전 뭘 어째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다들 자기가 뭘 하는지 똑똑히 아는 것 같았어요. 소방수가 꿈인 꼬마가 소방서에 놀러 가서 건장한 소방수들이 일을 제대로 해내는 모습을 본 격이었죠.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멋지고 강인한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갑자기 얻은 그 지식을 소화해서 저를 위해, 제 아이를 위해, 세상을 위해 쓰고 싶었어요."

 

 

머랜다는 빠르게 세뇌당했다. 지위를 얻으려고 계속해서 글을 올렸고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 '당신은 아주 강인하고, 똑똑하고 최고로 잘하고 있어요!'라는 식의 댓글이었다. 머랜다는 이 경험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모았어요. 정치에 참여하는 기분이었어요."

 

얼마 후 머랜다는 세상 밖으로 나가 도덕 게임(집단 내에서 우선하는 도덕규범을 잘 지킬수록 지위가 높아지는 게임, 이 경우에는 백신 반대에 대한 믿음)을 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신념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사촌들에게도 알렸다. 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제기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해서 함께 토론하고 싶어 졌어요.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는 당신들보다 똑똑해!, 나는 당신들보다 더 많이 알아! 이거 봐. 내가 아는 이걸 당신들은 모르잖아. 이런 생각들이었죠.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네요. 그땐 제가 다 아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죠. 저들도 알게 될 거야 나와 언쟁을 벌인 걸 후회하는 날이 올 거야."

 

머랜다는 그 그룹으로 돌아가 활동을 보고하면 지위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병원에 가서 싸웠어요' ' 사촌네 가서 열변을 토하고 왔어요' 이런 보고들을 통해 머랜다는 남들이 닮고 싶어 하는 엄마가 되었다. 

 

머랜다는 딸을 출산했고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는 사이 같은 집단 구성원이 내세우는 몇 가지 극단적인 신념이 불편해졌다. 머랜다는 평소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고 자부했고 어릴 때부터 과학책을 즐겨 읽었다. 

 

"저는 늘 진심으로 과학을 사랑하고 신뢰했어요"

 

머랜다는 이런 반골 기질 덕에 살아남았다. 머랜다는 스스로 증거를 토대로 백신 반대 주장을 펼쳤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그 그룹의 엄마들 중 일부는 동성애자가 되는 이유가 오로지 백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누군가는 에이즈도 백신 때문이라고 했고, 다른 엄마는 우리처럼 백신 안 맞는 엄마들을 미국 정부에서 수용소로 끌고 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저런 정신 나간 소리를 볼 때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싶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왜 이런 주장 중 하나를 선택해서 완벽한 진실이라고 믿고 다른 주장은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까? 역시나 내가 근거로 삼은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나온 정보인데."

 

머랜다는 다시 구글을 검색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자신의 편견에 반박하는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주류 의학이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도 고민했다.

 

"저는 천식을 앓고 있고, 저희 아버지는 장애가 있고, 저희 집안에는 의학적 문제가 많아요. 약이 없었다면 전 아마 천식으로 죽었겠죠.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이해됐어요."

 

머랜다는 말없이 페이스북 그룹에서 나왔다. 그리고 딸을 늦게나마 백신 접종 했다. 백신 찬성 페이지인 '백신을 찬성하는 목소리'에 가입했고 그간의 경험을 블로그에 풀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전에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 머랜다가 배신한 사실을 알았다. 

 

"블로그가 폭발했어요. 제 글이 가장 많이 읽힌 게시물이 됐어요. 그리고 백신 반대 모임에서도 공유 됐죠."

 

그렇게 그녀를 향한 혐오가 찾아왔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엄마라고 저를 추켜세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형편없는 엄마라고 비난했어요. 이제 그들은 제게 '애 낳다가 죽었어야 했어!'라고 비난을 퍼부었죠."

 

심지어 그 집단에서 머랜다와 직접 소통한 적 없는 높은 지위(네임드 유저)의 사람들이 딸이 자라서 엄마를 미워하고 저능아가 될 것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지위게임 中 윌 스토 지음

 


머랜다는 이름이 외국사람일 뿐 멀리 있지 않다. 당장 한동훈 관련 기사 댓글만 봐도 한국의 머랜다가 많이 보인다. 이재명을 핍박하는 한동훈에게 어떤 기사라도 나면 득달같이 달려와 악플을 달고 본인 그룹에게 공유를 한다. 본인들을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어떤 악을 물리치는 중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모든 정치 카페에 있다. 건사랑에도 있고, 안철수 지지 카페에도 이런 것이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본인이 믿고 싶은 현실만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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