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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노화와 기억, 설단현상: 나이가 들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과 걱정의 경계

by 인생오십년 2023. 12. 25.

설단현상의 빈도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혀끝에 맴도는 느낌)

 

아마 뇌의 처리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설단현상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노화와 알츠하이머병이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떄문이다. 

알츠하이머병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증상이 더 무섭고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설단현상을 병증이라고 여기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기억 인출이 원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물론 답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갈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생각나지 않던 단어는 언젠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잠시도 그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면, 검색을 하면 된다. 

 

많은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있을 떄마다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면 문제를 더 키우게 되고 이미 약해져가는 기억력이 더 망가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마치 인터넷 검색 서비스가 기억력을 망치는 첨단 목발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이것은 근거 없는 믿음이다. 정신적 고총을 감수하면서까지 혼자 힘으로 기억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써봐야 기억력이 좋아지지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기억력을 위해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인터넷의 도움 없이 기억해냈다고 해서 설단현상을 덜 겪는 것도, 설단현상에서 더 빨리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잘 기억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다고 자기 전에 심장 약 먹는 걸 잊지 않을 가능성이나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할 가능성이 조금도 높아지지 않는다. 

 

설단현상은 기억을 불러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오류로서 우리 뇌가 지금과 같은 구조를 갖기 때문에 생기는 부산물이다. 눈이 잘 안 보이면 안경을 쓰면 되고, 단어가 혀끝을 맴돌기만 하고 떠오르지 않으면 검색창에 검색해보면 된다. 

사람들이 무엇을 잘 잊어버리는지 순위를 매겨보면 고유 명사가 일반적인 단어보다 설단현상에 훨씬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이름을 잊는 것은 완전 정상적이고 빈번한 현상일 뿐,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상은 아니다. 

 

누군가 나와 친구에게 어떤 남자의 얼굴 사진을 보여군다고 하자. 

 

나에게는 그의 직업이 베이커(제빵사)라는 정보를, 친구에게는 그의 이름이 베이커라는 정보를 알려준다. 며칠 후에 그 사람은 나와 친구에게 같은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남자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말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내 친구가 그의 이름은 베이커라고 떠올릴 가능성보다, 내가 제빵사라는 직업을 떠올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분명 나와 친구는 같은 사진을 보고 베이커라는 같은 단어를 들었다. 그런데 왜 베이커라는 동일한 정보가 이름이 아니라 직업으로 저장되었을 때 더 잘 기억되는 걸까?

 

이것은 베이커/베이커의 역설이라고 알려진 현상이다. 주변에 아는 베이커가 없더라도 제빵사라는 직업은 뇌에서 여러 가지 연상, 시냅스 신경회로와 연결되어 있다. 사진 속의 남자가 베이커라는 말을 드는 순간 나는 하얀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그의 모습을 시각화 했을지도 모른다. 

 

밀대나 반축용 나무주걱을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을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자주 갔던 빵집과 좋아하던 밤빵이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반면 사진 속 남자의 이름이 베이커라는 말을 들었을 떄 만약 지인 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떠오를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명으로서의 베이커는 추상적인 개념이고 신경회로가 떠 뻗어나갈 여지를 주지 않는다. 베이커라는 이름이 눈앞의 사진 말고는 외에 저장된 어떤 정보와도 연결되지 않기 떄문에 기억하기가 어렵다. 

 

기억인출 과정을 구글 검색과 비교해보면 베이커라는 인명보다 베이커라는 직업명에 대한 검색 이력이 더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기억의 뇌과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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