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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본의 무기화, 그 서막 – 관세 철회와 벌칙세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장

by Mansamusa 2025. 5. 30.

2025년 5월 29일, 미국 국제무역재판소(CI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고율 보복관세 조치를 위헌이라 판결했다. 이는 IEEPA(국제긴급경제수권법)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언뜻 보면 시장에는 호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치다. 관세가 낮아지면 공급망 회복과 수입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고, 이는 곧 물가 하락 및 실질 성장률 상승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그러나 이 호재는 너무 일찍, 너무 강하게 시장에 전달되었다. 이번 판결은 단기적으로 거시경제의 과열 기대감을 더 부추기는 신호탄이 되었고, 오히려 증시에는 위험한 낙관을 유도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 진영의 반격도 본격화되고 있다.

관세 철회? 그건 시작일 뿐…

CIT의 결정은 법적 유예기간 10일을 두고 있으며, 트럼프 진영은 즉각 항소에 나섰다. 항소가 진행 중인 동안에는 판결의 효력도 사실상 중단된다. 더욱이 보수 성향의 대법원이 이를 뒤집을 가능성도 높다. 결국 시장이 느끼는 '완화'는 실체 없는 기대일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의 핵심은, 트럼프가 단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그는 여전히 다른 조항(232조, 301조, 심지어 1930년 관세법 338조나 1974년 무역법 122조까지)으로 압박을 지속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정치적 명분’을 확보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악재의 총량은 보존된다"는 원칙이 다시금 입증되고 있다.

‘섹션 899’의 폭탄 – 외국인 투자자 벌칙세

이 와중에 또 다른 시한폭탄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하원을 통과한 미국의 세출·세제 통합 법안에 포함된 ‘섹션 899’. 이 조항은 미국 정부가 "차별적"이라 판단한 외국 세금 정책에 대응해, 해당 국가의 투자자에게 벌칙성 과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시작은 +5%포인트 세율이고, 매년 누적돼 최대 20%포인트까지 인상 가능하다.

이 조항의 공포는 그 범위와 불확실성에 있다. 대상은 국부펀드, 연기금, 민간 투자자, 해외 법인까지 광범위하며, 현실적으로 캐나다·프랑스·영국 등 디지털세를 부과한 우방국이 첫 타깃이 될 수 있다. 특히 미국 국채까지 이 조항이 적용된다면 외국인의 자금이탈은 단지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무려 7조 달러 이상이다.

자본의 무기화, 그 반작용

‘섹션 899’는 단순한 법조문이 아니다. 미국이 자본시장이라는 ‘열린 세계’의 상징적 위치에서, 자국 중심주의적 금융 보호주의로 돌아서고 있다는 신호다. 이는 무역전쟁의 종언이 아니라, 자본전쟁의 서막이다. 이 조항은 곧 미국 금융시장을 “정치 외교적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선언이며, 전 세계 자금의 리밸런싱을 촉발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실질 수익률이 줄어든다는 단순 계산을 넘어서, 정책 리스크가 내재화된 자산을 꺼리게 된다. 달러 약세, 국채 매도 압력, 실질 금리 급등 등이 뒤따를 수 있다. 특히 일본처럼 초저금리 기반으로 미국 자산에 투자해 온 국가들은 캐리트레이드 청산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곧 엔화 강세 + 글로벌 리스크 자산 약세라는 위험 회피의 연쇄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한국 시장과 원화, 그리고 대응

한국 시장은 외국인 자금 유입에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위험자산 선호 지표로서 기술주 중심의 코스닥은 특히 민감하다. 섹션 899의 시행 가능성이 시장에서 ‘현실적 변수’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시점, 즉 상원 통과 혹은 조정 예산안에 최종 포함되는 순간, 외국인 자금 이탈 리스크는 한국에도 전가될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에서는 원화 약세가 아니라 원화 디커플링이 주목된다. 달러 약세가 발생하더라도 엔화가 급등하고,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는 국면에서 원화가 상대적으로 뒤처질 경우, 원화 중심 신흥국 리스크 프리미엄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더리움은 안전한가?

일각에서는 “이럴 때야말로 암호화폐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더리움은 ‘디지털 금’이 아니다. 최근의 흐름에서도 확인되듯, 이더리움은 투기성과 테마성 자산으로서 주식과 동조성을 보일 뿐, 헷징 수단으로 작동하긴 어렵다. 특히 거시 불확실성이 금리와 연결돼 있을 경우, 이더리움은 오히려 약세 압력에 직면하기 쉽다.

 결론 – ‘달아오른 기대’ 이후

우리는 지금, 단순히 ‘관세 철회’라는 이벤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지나친 낙관정치적 반작용의 시간차 공격 사이에 놓여 있다. 금리 인하 기대, 공급망 정상화, AI 투자 열풍이라는 세 가지 엔진이 과열된 지금, 규제는 단순한 제동이 아니라 전환점의 신호가 된다.

과열은 더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반작용은 반드시 도래한다. 지금이 바로, 포지션의 방향이 아니라 포지션의 유연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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