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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2022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고

by 인생오십년 2022. 9. 1.

항상 옛 소설가들 소설만 읽다가 문득 요즘 작가들은 어떻게 쓰나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등단에 계속 떨어져서 제가 쓴 소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평가 받았었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최근 문법과 안 어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쓰기만 하고 남의 것을 읽지 않으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또한 문장도 요즘 사람들은 간결하게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황하진 않지만 간결하지 않은 문장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등단한 사람들의 글을 읽고 싶었습니다.

최근 트렌드는 성 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동성애를 다루기보다, 에이섹슈얼, 바이섹슈얼 등 다양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저의 입장은 "내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상관없다."입니다. 하지만 미디어나 시위를 통해서 자신들의 색을 나타내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통해 그런 사람들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지만, "역시 작품성을 위해서는 저런 주제가 여전히 잘 먹히나..."라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저는 왜 성 소수자에 대한 글이나 예술작품, 영화 등이 인정받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작품성은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철학적 고찰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이 그런 것들을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사실 단순히 따지면 그들은 그냥 소수의 취향을 가진 특이한 사람들이지, 아름답거나 무슨 예수 그리스도마냥 핍박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작품을 작품성이 있다고 인정하니, 그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겠죠.

 

젊은 작가들의 문장은 간결한 사람도 있었고, 저보다 더 장황하게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문장 실력이 그 작품성을 가르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남의 것을 읽기에는 간결한 것이 편하긴 했습니다. 충격 받은 것은 클리셰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작품 중 어느 하나 뻔한 결말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신선하게 보이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고쳐썼는지 흔적이 보여 새삼 존경스러웠습니다.

 

다시 한번 글을 써볼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문장은 간결하게, 클리셰는 최대한 없애 뻔하지 않는 글을 써야 합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등단 못할 수도 있겠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는 재능이라 했고, 스티븐 킹은 무조건 쓰라고 했습니다. 누가 맞는지는 대중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번에 읽은 웹소설 쓰는 책에서는, 웹소설로 성공은 해도 등단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 작가는 등단하기 위해 따로 과외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작품성을 편향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문학계가 못마땅하지만, 어떻게든 인정받아야 "글쟁이"에서 "작가"가 되는 모양입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해서 앞으로 제 작품에 잘 녹여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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